용재(庸齋) 백낙준(白樂濬)은 한국교육계의 대들보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연세대 진흥에 생애를 바쳐 한국의 대표적 명문 사학으로 키웠는가 하면, 광복 후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한국의 교육이념으로 정착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6·25전쟁 때는 문교부 장관으로, 세계 교육 사상 유례없는 ‘전시하 노천수업’을 실시하여 내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4·19혁명 후에는 참의원 의장으로 잠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기도 했다.용재는 1895년 3월 9일 평북 정주군 관주면 관삼동에서 백영순(白永淳)과 경주 김씨 사이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박열(朴烈)은 일본 천황 일가족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른바 대역사건으로 내각총사퇴까지 몰고 온 풍운아다. 박열은 이 사건으로 장장 23년간 옥고를 치른 후 광복 한국에 돌아와서는 때때로 총리·장관 물망에 오르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는 1902년 2월 3일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 98번지 샘골(현 문경시 모전동)에서 아버지 박지수(朴芝洙)와 어머니 정선동(鄭仙洞)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함양 박씨)은 전통적인 유가 가문으로 존경을 받아오던 지방 명문이었다. 모친의 꿈에 어느 날 밤 청룡·황룡이 오두막집 방문으